앵커: 3월 8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날을 ‘국제부녀절’이라고 부르며 공휴일로 지정하고, 전국 각지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하는데요. 하지만 정작 여성의 인권보다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강조하며,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유엔과 국제사회가 북한 여성의 인권 개선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을 거듭 권고하고 있지만, 북한은 계속 거부하고 있는데요. 북한이 선전하는 ‘국제부녀절’과 실제 북한 여성의 인권 상황에 큰 차이가 있다는 지적은 올해도 변함없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서혜준 기자가 북한 여성의 인권 현주소를 짚어봤습니다.
“북 ‘국제부녀절’은 체제 선전용 도구”
[조선중앙통신] 저를 로력영웅으로 내세워주시고 오늘 이렇게 일꾼으로 내세워주신 그 사랑과 배려에 높은 생산 실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지난해 3월 8일, 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서 열린 국제부녀절 행사에 참석한 이 여성은 ‘노력영웅’ 상을 받은 보답으로 더욱 높은 생산 실적을 내겠다고 조선중앙통신 기자에게 말합니다.
이 밖에도 조선중앙통신은 국가과학원 연구사, 김형직사범대학 연구사 박사, 출산을 ‘애국 사업’으로 여기며 다섯 명의 자녀를 둔 여성 등을 대표적으로 소개했습니다.
이처럼 북한은 ‘국제부녀절’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기념행사를 열고, 여성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충성하고 맡은 역할에 헌신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여성 탈북민 김수경 씨는 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에서 여성에게 특별히 ‘영웅’ 칭호를 부여하며 이를 방송에 소개하는 것은 여성들을 사회주의 건설에 동원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수경]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내세워서 사기를 북돋아 집에서 아기 보는 데만 전념하지 말고, (사회주의 건설 등) 농사를 지어서 인민들의 생활 또는 지역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을 더 열심히 하라는 거예요.
또 김 씨는 “북한이 김일성, 김정일 생일 경축 행사 외에 국제부녀절을 크게 기념한다”라며, 이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남녀평등을 추구하려는 모습을 강조하고, 여성들을 사회적 일꾼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RFA의 주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북한 대학 교수 출신 탈북민 김현아 씨도 “북한 당국이 여성들에게 제시하는 과업은 세계적인 흐름과 다르다”라며, 북한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일절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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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북한 여성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탈북민 인권운동가 박지현 씨도 북한이 국제부녀절을 체제 선전을 위해 활용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박 씨는 6일 RFA와 한 전화 통화에서 “국제부녀절은 1946년 7월 북한이 발표한 ‘남녀평등권법’을 강조하기 위한 체제 선전에 여성들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지현] ‘사회주의 혁명’, ‘여성 해방’에 대한 선전입니다. 여성들이 사회주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해야 한다는 선전일 뿐이지, 실질적으로 여성 인권과 성평등에 대한 인식, 이런 것이 전혀 없는, 그냥 사회주의 혁명의 선전 도구 중 하나인 거죠.
박 씨는 북한 헌법에 남녀평등을 논하며 ‘여성은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라고 명시돼 있지만, 이는 여성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에 대한 교육조차 받지 못해,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또 그는 “북한에서는 여성을 꽃이라 부르며 마치 국가가 여성들을 대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탈북하고 보니 이것 또한 인권 침해인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중 얼굴이 곱거나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국가가 강제적으로 발탁해 갔다”라며 “본인이 원치 않아도 이들은 북한 당국의 기쁨조나 외화벌이 공연단에 소속돼 충성을 바쳐야 하는 실정”이라고 박 씨는 지적했습니다.
북, 여성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 권고 외면
지난해 11월 진행된 북한에 대한 제4차 국가별정례인권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UPR) 심의.
이 자리에서 북한은 “(북한) 여성들이 애국자로 존경받고 일반적인 사회 복지와 특별한 혜택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심의에 참여한 독일 측 캐롤린 엑트(Carolin Echt) 정치 고문관은, 특히 북한 여성에 대한 심각한 인권 상황과 이를 개선하려 하지 않는 북한의 태도를 지적했습니다.
[캐롤린 엑트] 북송된 여성들에 대한 강제 낙태와 성폭력에 대해 듣는 것이 고통스럽습니다. 또한 가정폭력, 성폭력을 범죄로 규정하는 효과적인 법의 부재, 불충분한 출산 건강 서비스, 그리고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문제를 인정하거나 해결하지 않는 북한의 태도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 에콰도르와 조지아 측은 “여성 및 아동을 대상으로 ‘유엔 국제연합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 협약’을 보완하는 인신매매 방지, 억제 및 처벌을 위한 의정서를 비준하라”고 권고했는데, 북한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에서 정의한, 여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고, 사회적 제도와 관행에서 성별에 따라 차별하는 일이 없도록 촉구하는 아이슬란드 측의 권고사항 또한 거부했습니다.
북한은 2001년부터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의 비준국으로서 협약에 따라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여성 인권 보호를 위한 북한의 이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도 북한이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인신매매를 방지하고 억제하며, 이를 처벌하기 위한 의정서를 비준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북한 여성이 여전히 인신매매, 강제 결혼, 성매매에 연루돼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임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실제로 북한은 제4차 국가 심의 채택 여부에 대한 최종 보고서에서도 “정치적 동기에 기반한 유엔 기구를 인정하지 않으며, 특히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지현 씨는 “북한이 국가별정례인권검토나 여성차별철폐협약 등에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지만, 북한의 가부장적 문화와 헌법이 명시하는 문제점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박지현] 감옥에서 간수들이 여성들을 몸수색한다든가, 장마당에서 보위원들이 임의적으로 여성들이 몸을 만지고 수색하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국제사회가 문제 제기를 많이 안 했습니다. 북한에는 원래 여성에 대한, 성평등에 대한 교육이 없기 때문에 김정은의 지시가 내려오면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한 성적 차별, 성적 폭행을 마음껏 저지르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국제사회가 언급을 안 하기 때문에...
또 박 씨는 눈에 보이는 안타까운 여성 인권 상황 외에도 북한 헌법에 적힌 여성에 대한 발언 등 기본적인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필요하다고 부연했습니다.
북한은 올해도 국제부녀절을 맞아 여성의 헌신을 강조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일, 김정은 총비서가 펼친 여성 친화 정책을 열거하면서, 여성들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칠 줄 아는 참다운 여성 혁명가, 건결한 애국자”라고 보도했습니다.
또 “사랑하는 자식들의 어엿한 성장과 가정의 화목, 조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뿌리와 밑거름이 되어 성심을 다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탈북민 김수경 씨는 북한이 여성을 존중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국제부녀절과 같은 기념일을 더욱 특별히 챙기는 것 같지만, 실상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지적합니다.
[김수경] 북한이 사회적으로 여성들을 차별하기 때문에 이런 날이 더 특별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평소에도 존중받고, 본인이 좋아하고 원하는 분야에서 재능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국제부녀절같이 기념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은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나 싶습니다.
행사만 요란하게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문화적으로 자연스럽게 여성의 권리와 자유가 보장될 때, 북한 국제부녀절의 의미는 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와 탈북 여성의 주문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