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미국 에너지부(DOE)의 한국 민감국가 지정 조치가 발효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서는 ‘핵 자강론‘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지적과 이에 대한 반박 의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한 것과 관련한 제한 조치가 미국 현지시간 15일 공식 발효됐습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15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며, “한국 정부의 정책적 사유가 아닌 기술적 보안과 관련된 이유로 민감국가에 포함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외교부 당국자가 언급한 기술적 보완 관련 문제란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 도급업체 직원이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한국으로 유출하려고 한 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난달 17일 미국 에너지부 감사관실이 미 의회에 제출한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보고 대상 기간인 2023년 10월부터 2024년 3월 사이,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 도급업체 직원이 수출통제 대상에 해당하는 정보를 소지한 채 한국으로 향하는 항공기에 탑승하려고 했다가 적발된 사건이 발생한 바 있습니다.
다만 해당 사건이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한 유일한 배경은 아닐 것이라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겸 6자회담 수석대표, 주러시아대사, 외교부 북미국장 등을 지낸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윤석열 정부가 내비친 핵자강 입장이 민감국가 분류에 영향을 줬다고 비판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1월 국방부·외교부 신년 업무보고에서 “문제가 심각해지면 전술핵 배치나 자체 핵 보유도 가능하다”고 발언했고 같은해 4월 미국 방문 중에는 “1년 안에 핵을 가질 기술 기반을 보유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위 의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미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 비확산과 한미확장억제 협의 강화를 내세우며 다른 한편에서는 핵무장 가능성을 수차례 언급”했다며 “미국이 한국을 요주의 국가로 볼 수밖에 없게 행동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위 의원은 지난달 25일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과거 1993년 제1차 한미 과학기술공동위원회 자료를 보면, 미국 정부가 ‘오로지 핵과 관련된 문제‘라고 민감국가 지정 이유를 밝힌 대목이 확인된다”며 이번 민감국가 분류 또한 “핵 개발 문제가 얽혀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1981년 민감국가 제도 첫 시행에서 한국을 민감국가 명단에 올렸고, 13년 만인 1994년 7월 한국을 지정 해제한 바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위성락 의원은 17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윤 전 대통령은 물론, 국민의힘 거물급 정치인 다수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핵 자강론자였다며 미국이 경계심을 갖고 지켜봤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위 의원은 또 만약 미국이 한국의 핵자강 문제를 이유로 민감국가 목록에 올린 것이 맞는데에도 한국 정부가 지금과 같은 입장만 고수한다면, 향후 문제를 풀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 정부 입장이)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는데 만약에 안 맞다면, 미국이 핵 개발 문제하고 연결해서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풀기 어렵게 되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 문제를 풀려고 해야 합니다. 핵 개발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건 나는 틀렸다고 생각해요.

관련 기사
한국 정치권 ‘핵무장’ 논쟁 재점화...총리 “고려 단계 아냐”
“미 민감국가 지정 당시 한국 내 핵자강 논의 실종”
반대편에서는 미국의 한국 민감국가 목록 추가와 핵자강 여론은 어떠한 관련이 없다는 반론도 제기합니다.
세종연구소의 정성장 한반도전략센터장과 피터 워드 연구위원은 3일 ‘미국이 핵무장론 확산을 이유로 한국을 민감국가에 지명했을까?’ 보고서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목록에 추가한 지난 1월은, 윤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등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 논의가 아예 실종됐던 시기”라며 “자체 핵무장론 확산 때문에 민감국가 목록에 추가됐다는 주장은 상황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또 “한국 정부가 핵무장을 추진하는 구체적 징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체 핵무장 여론만으로 우방인 미국 행정부가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억제력 강화, 핵무장이 답인가’ 토론회에서 정성장 센터장의 말입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아래에서 핵무장론은 완전히 실종되었는데 갑자기 느닷없이 한국의 핵무장론 확산 때문에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다고 이야기를 하니 참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죠.
이밖에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배경에는,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전을 수출하려고 노력했던 정황,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와 한국수력원자력 간 지식재산권 분쟁 등 제3의 요인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 또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편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조속한 시일 내 민감국가 목록에서 지정 해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유 장관은 민감국가로 지정된 이유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도 정확히 원인이 알려지지 않았고 미국도 발표를 안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도형입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