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예정했던 해외 관광객들의 라선 관광을 갑자기 중단했다고 합니다. 해외 여행사 관계자는 북측에서 “라선을 폐쇄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코로나 대유행병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 관광객들을 받아들인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것이 지난 달 중순이었는데요. 한 달 채 지나지 않아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안팎으로 감출 것이 워낙 많으니 문을 온전히 열지도 못하고, 먹고 살 걱정을 하자니 철저하게 닫지도 못하는 북한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지난 달 중순에 고려투어와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 등 외국 여행사 직원들이 나선경제특구에 방문해 북한 관광 정보를 파악했습니다. 그 후 북한의 국가관광총국 홈페이지에 러시아 관광객들을 환영하는 광고 영상도 올렸습니다.
하지만 지난 5일 여행사의 북한 관광 담당자들은 ‘라선 관광 중단 통보’를 받았답니다. 북한 관광을 신청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여행사 입장에선 당혹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예고도 없이 진행하던 관광사업을 중단한다는 일방적인 통보는 ‘신뢰관계’에 대한 국제적인 예의와 관습을 깡그리 무시한 행동입니다. 단순히 북한 관광 사업에만 악영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국제적인 정평에 치명적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부정적인 특성의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습니다.
북한 당국의 갑작스런 관광취소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여행 이후에 인터넷 사회연결망에서 북한 체제를 비난하고, 북한 지도자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발언을 한 것과 관련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발언보다 북한 당국의 갑작스런 관광취소가 오히려 북한과 지도자의 권위를 더 효과적으로 훼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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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부터 5일간 라선관광을 한 프랑스인 여행자는 라선의 도심과 건물, 정치구호가 적힌 광고판 사진을 인스타그램이라는 세계 최대 사회연결망에 올렸는데요. 그 내용이 체제 비난까지는 아니었지만 자랑스러운 북한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현지 안내원이 허락할 때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안내원이 정해준 사진 각도로만 촬영이 가능했고 지도자들의 사진은 영상에서 일부가 잘려 나가게 찍지 말라고 했습니다. 관광 일정도 매일 아침이 되어서야 북한 당국과 협의 조정해서 확정됐다고 합니다.
프랑스 여행자가 설명한 내용이 북한 주민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생활로 들릴지 모르지만 보통 나라 사람들은 누구도 이런 식으로 여행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인터넷 등에서 항공권을 사고 호텔을 예약하고, 여권을 들고 필요하다면 비자를 받아서, 입국하고 여행을 시작합니다. 가 본 적 없는 작은 도시의 뒷골목을 원하는 대로 발 닿는 대로 굽이굽이 산책하거나, 오래된 건물이나 사적지를 돌아보고 미술품과 공연을 감상하면서 그 나라 특유의 문화를 맛보고, 이국적인 역사와 문명을 경험 하기를 희망합니다. 또는 웅장한 자연을 즐기거나 햇살 좋은 바닷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일 수영하며 쉬기도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가다가 이색적인 식당을 만나면 계획 없이도 전통음식을 즐기는 것도 여행의 숨겨진 보물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행인데요. 북한에서 이런 식으로 자유로이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
북한 당국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로 내려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대상 사업에서 관광사업은 예외입니다. 합법적 외화벌이 창구라는 말이고 관광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경제적 관점에서 당연히 이점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문호를 열어 두지만 못 하는 입장이지요. 법적으로 남한의 문화적 요소를 전면적으로 불법화하고 세계의 갖가지 유익한 정보들도 다 차단한 것이 북한의 현실이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참 답답합니다.
한편, 북한 여행을 신청하는 세계 사람들은 거의 대다수가 현재 북한의 현실을 익히 알고 있을텐데요. 그렇다면 이들에게 북한 사회 현실을 가릴 이유나 명목, 논리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뚜렷한 효과가 딱히 없습니다. 요즘은 인공위성으로 북한의 정치범 관리소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데, 육지의 관광객들 눈과 카메라를 가리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일까요.
외국인들이 무엇을 볼까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특히 지도자의 사진이 잘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미신같은 우상화는 집어치우고, 외국 여행객들에게 빗장을 조금씩 열어 보는 게 어떨까요. 관광객들에게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국제적 신뢰도만 깎아버릴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는 낙후했지만, 아름다운 산과 해변, 강이 있으니 어서 와서 편히 쉬었다 가라는 광고가 필요해 보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