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이순희: 오늘 이 시간에는 사고 이후 남한 정부와 국민들의 대처 모습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살다 보면 나라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사고를 겪게 되잖아요. 그 어느 나라라도 사고 없는 나라는 없을 거예요. 그건 남북한 모두 마찬가지이고요.
기자: 최근 남한에서 무안공항 비행기 추락 참사가 발생했죠. 이 사고로 탑승한 181명 중의 179명이 사망하는 참 안타까운 소식이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 정착한 후 어떤 사고들을 접하셨나요?
이순희: 제가 남한에 온 지 10년이 넘었으니 여러 국가적 참사가 있었죠. 천안함 피격 사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태원 압사 사고 등 정말 비극적인 일이 많았어요. 특히 천안함 피격 사건은 북한의 소행이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게 비통하면서도 제가 살아온 북한이 원망스럽고 미웠어요. 또 세월호 때는 고등학생들이, 이태원 압사 사고에서는 축제를 즐기던 젊은이들이 유명을 달리해서 마음이 아주 아팠죠.
기자: 북한에 있을 때도 이런 큰 사건·사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일이 있었나요?
이순희: 사실 북한에서 큰 사고가 있어도 쉽게 알기 어려워요. 주변에서 참사가 벌어져야 입소문을 통해 듣는 거죠. 하나 기억나는 건,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제 초등학교 동창이면서 먼 친척뻘 되는 친구가 군 의대에 복무 중 공사하다가 큰 콘크리트 벽이 갑자기 무너져서 깔려 죽었거든요. 그 친구가 외아들이었는데 친구의 부모님은 뒤늦게 소식을 접했지만, 주변에 알리지도 못하고 숨죽여 울던 기억이 나요. 그 사고 이후로 그분들의 머리가 몇 달 새 하얗게 세더라고요. 어디에다가 말도 못 하고 쉬쉬하니 속이 더 까맣게 타들어 가셨겠죠.
기자: 만약 남한에서 같은 사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이순희: 나랏일을 돕다가 이렇게 된 건데 보상은 당연하고, 기사라도 한 줄 나왔을 거예요. 살날이 한참 남은 젊은이가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으니, 유가족들에게 어떤 보상이라도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도리는 해야죠. 그런데 북한 같은 경우는 안전장치도 없고 공공시설도 부실하니 사고가 자주 나는데도 이 사고를 언론에 절대로 내지 못하게 해요. 언론은 오직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 긍정을 통한 대중 교양을 교육하는 역할에 국한되다 보니까 이런 사고가 나도 알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몇십 명, 몇백 명이 죽는 사고가 나도 국민들은 모르거나 알게 돼도 말하고 다니면 처벌받으니까 꼭꼭 숨기면서 입 밖으로 못내요. 더 마음 아픈 건 사고 당사자나 유가족들도 그 사고에 대해서 언급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하고 보상을 묻지도 못해요.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죽으면 전사증이라는 종이 달랑 한 장 오면 끝이고요. 그 어떤 훈장도, 보상도 없어요.
기자: 순간의 사고로 평생 고통받을 당사자 또는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보상은커녕 주변에 알리지도 못하는 상황이 참 가혹하네요. 그럼, 남한에서 발생한 이번 무안 비행장 사고에는 어떤 대처가 있었나요?
이순희: 사실 이번 사고 때 윤석열 남한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는 중이라 권한대행이 대신 처리했어요. 우선 무안 여객기 사고 수습 대책위원회를 꾸렸고요. 권한대행이 직접 사고 현장으로 달려간 건 물론이고,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사고 정황을 파악하고 1시간 간격으로 유가족들에게 상황도 알려줬어요. 이 사고를 전하는 기사들도 쏟아져 나왔고요.
이번 참사는 국가의 책임이라기보단 항공사 책임에 가까워요. 그래서 항공사 측에서 최소 인당 2억 5,000만 원 정도 배상해 줄 것이라고 발표했어요. 또 남한은 몬트리올 협약 가입국이기 때문에 이 보상금액이 더 올라갈 수도 있고요. 다만 국적, 연령, 소득에 따라 최종 보험금이 달라질 수는 있다고 해요. 그리고 사고 이후 7일 동안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해서 전국민적으로 추모할 수 있게 조성했어요. 국가 애도 기간에는 축제 등을 자제하면서 다 같이 위로하고 애도하는 기간인 거죠. 금전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최대한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느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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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국가적 대형 사고의 경우에는 모금 행렬이 이어지기도 하죠?
이순희: 맞아요.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특별모금 운동이 벌어졌어요. 자발적으로 모금 운동에 나서는 국민과 단체들, 연예인이 많아요. 또 지자체에서도 이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하고요. 사망자 신원을 확인하고 시체를 수습할 동안 유가족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자 휴식 장소와 대기실도 마련해 드리고 따뜻한 차와 생필품을 준비해 드리기도 하고요. 뉴스를 보니까 그 구호 물품이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 끝이 안 보일 정도였는데, 그 사진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어요. (참사 현장은) 눈이 오고 비가 오기 때문에 춥거든요. 그러니까 유가족이 따뜻하게 품을 수 있게 (핫팩을 마련) 해주기도 하고 그분들과 함께 밤을 새우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서울에서부터 무안 비행장까지는 차를 타고 4시간은 와야 하는데 눈비 오는 속을 뚫고 4시간 동안이나 와서 1박 2일을 함께 지내면서 유가족들 손을 잡아주고 따뜻이 위로해 주어요. 또 비행기 사고는 시신이 훼손된 게 많잖아요. 이를 대하는 유가족들이 마음속 아픔, 놀란 심정을 위로하기 위해서 심리 상담사들이 옆에 함께 계신다고 해요.
기자: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위로를 건네고 있는데, 이 같은 참사 후 남한 정부와 국민들의 대처에 대해서 한 마디 해주시죠.
이순희: 북한에서는 행여나 사고 소식이 외부에 안 좋게 비칠까, 국민들이 동요할까 봐 쉬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남한에서는 사고 소식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알려서 원인을 찾고 국민들의 추모를 받고 서로 도울 수 있는 만큼 돕는데, 이 모습이 북한과 정말 천지 차이라고 느껴요. 물론 사고는 나지 말아야겠지만, 부득이하게 난 사고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참 중요한 것 같은데요. 우리 북한 고향 분들이 국가적 참사를 당했을 때 그 어떤 국가의 사죄와 보상이 없는 허망한 희생양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네,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국가적 참사 후 남한의 대처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